먼지 속의 진실(In Dust Real), 2016
백기영(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천근성은 조각을 전공하고 다양한 공공조형물을 제작해왔다. 그의 조형물 작업은 공공공간에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형상을 취하거나 <집 속의 집 2014>처럼, 관람객 참여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2013년에 문래동에서 있었던 <예술장이, 공장장이>는 이런 천근성의 초기 작업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때 그가 제작한 작품은 문래동 철공소에서 사용하는 공구로 만들어진 동물모양의 공공조형물이나 거대한 용접 마스크를 들 수 있다. 이제는 문래동 입구의 상징물이 된 이 작품들은 문래동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런 그의 작업은 2015년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진행한 <창작경연 작가대전>부터 커뮤니티 아트 유형의 관계적 퍼포먼스 작업으로 전환되었다. 이전의 조형물 작업들이 버려진 장난감이나 플라스틱 용품을 모아 거대한 고릴라나 코뿔소를 연상시키는 ‘재현’ 작업에 몰입해 있었다면, 커뮤니티 작업들은 조형물의 결과보다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관계나 과정에 더 집중했다.
<창작경연>은 그가 입주 작가로 체류했던 대구예술발전소에서 만난 청소 용역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 작가 작업실은 에어컨을 충분하게 틀 수 있었지만,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방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노동자들이 무더운 여름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었다. <창작경연>은 작가의 방에 설치되어 있는 에어컨의 바람을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방에까지 연결해주는 작업이었다. 그는 건물을 가로질러 에어컨 통로를 설치한 이 작업에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예술기관들이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를 폭로했다. 동시에 이들의 희생을 통해서 기관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예술가의 불편한 마음을 작업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그 해 천근성은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이 기획했던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에도 참여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를 필요로 하는 일반 기업이나 시민단체, 병원 등과 같은 의료시설 등에 찾아가서 각자의 재능으로 이 기관들과 협업하는 사업이었다. 그는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한 채 거동을 할 수 없는 노인환자들에게 자기 집이나 고향집을 찾아가 영상을 찍어서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의 이와 같은 작업은 이른바, 클레어 비숍이 말한 ‘행정예술’ 혹은 ‘시민단체 형 프로젝트’에 가까워 보였다. 조형물 작업이 가시적인 시각적 예술을 목표로 했다면, 이 작업들은 삶에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제작된 것들이었다.
천근성은 이번 전시에서도 문래동 지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먼지’를 소재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천근성의 먼지는 지역의 사회적 쟁점과 접속되어 있다. 영어단어 ‘industry(산업)’와 ‘dust(먼지)’에서 착안한 전시 제목 ‘In-dust-real’은 ‘산업(Industry)’지역을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성을 들여다보는 ‘먼지 속의 진실(In Dust Real)’로 전환하여 해석 가능하다. 한 단어 안에 세 개의 틈을 만들면 완전히 다른 뜻이 되는 언어유희를 통해 ‘산업 공간’은 분자화 되면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영동포구 문래동 3가를 주소로 하는 문래예술촌은 1960년대 중반부터 50여 년째 '철공소 골목'으로 불리고 있는 곳이다. 소규모 철공소가 1300여 곳이나 있어서 한 때 철조를 바탕으로 하는 조형물제작을 의뢰하던 예술가들이 몰려와 둥지를 틀었고 이제는 제법 예술촌의 풍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 골목에서는 철판이나 강판, 봉제 등을 가공해서 기계 부품을 생산하는데, 이 과정에서 쇳가루 먼지가 발생해서 인근지역에 들어서면 비릿한 쇠 비린내와 누렇게 녹슨 아스팔트를 마주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이 지역을 지키고 있는 공장들은 이런 낙후된 풍경 때문에 예술가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이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도시에서처럼 이 지역에 위치한 소규모 제조 공장들은 1990년대 이후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영세한 작업환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0년대 이후, 도시 내 산업시설들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산업지구(Industrial area)’는 도시 환경에 유해물질을 내뿜는 혐오시설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문래동 공단 인근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문래동에서 발생하는 산업먼지 및 소음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그들은 ‘소음분진에 고통 받고 있는 ㅇㅇ아파트 주민일동’, ‘ㅇㅇ철강 전입 반대’와 같은 현수막을 길거리에 내걸고 철공소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지역의 문제를 인식한 천근성은 가장 먼저, 먼지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나이스한(?) 먼지수거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는 인근 지역의 가정과 공장, 사무실, 작업장, 가게 등을 찾아서 먼지 수거작업을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진행했던 <반복노동대행서비스>를 연상시킨다. <반복노동대행서비스>가 반복노동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마네킹을 디자인하고 제품을 소개하는 형식이었다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작가 스스로 서비스맨으로 나섰다. 그는 전단지를 제작해서 여기 저기 붙이고 SNS를 통해서 서비스 희망자를 모집했다. 먼지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 이 서비스를 수행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위를 지지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먼지가 예술품으로 둔갑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궂은일을 무상으로 해주겠다고 하는 젊은 청년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을 것이다. 대략 한 달 반 동안 모은 60여 리터의 먼지는 ‘카오틱 닷(chaotic dots)’으로 된 프렉탈 구조로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다. 서비스를 제공 받았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먼지를 생산해 낸 ‘먼지 유발자’들이며 여기저기서 모아온 먼지들은 문래동의 철공소 먼지들과 뒤섞였다.
동양철학에서는 작은 ‘먼지’에도 ‘태산’이 있고 ‘물 한 방울’에도 ‘대양’이 있다고 했다. 불교의 <반야심경(般若心經)>이 말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色卽是空 空卽是色)’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먼지’ 하나에도 색이 스며들고 이것이 전체인 듯 가득 차 있어 보이지만, 결국은 ‘공(비어 있음)’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인간은 종국에 ‘먼지’로 다시 돌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먼지’는 삶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천근성은 “먼지를 만들어 내지 않는 인간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의 대부분은 인체에서 떨어진 각질이다.”라고 말하면서 먼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질문하고 있다.
천근성은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그러해 왔던 것처럼,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철공소의 노동자와 작가의 경계, 입주 작가와 청소용역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거나 지워버렸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작업에서 예술은 쉽게 기체 상태로 증발해 버리거나 먼지와 같은 흔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했었던 ‘진실(Real)’을 찾아내고 그의 작업을 통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진 삶을 만들고자하는 순수한 마음을 만나게 된다.
(주)근성이엔지(ENG) 설립자 천근성의 작품들, 2016
홍경한(미술평론가)
인류와 기계의 대결처럼 비춰져 큰 화제를 낳았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대국 전후 두 개의 표정을 낳았다.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호기심이 대국 이전의 낯빛이었다면, 인간의 ‘일자리’ 문제는 대국 이후의 안색이었다. 알파고가 선전함으로써 오랜 시간 인간이 도맡아온 일을 기계가 대신할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포비아(AI-phobia)’는 지나친 기우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1패를 하며 최소한의 안도를 심어줬듯,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선 사고와 창의력, 상상력을 지닌 인간에게 아직은 인공지능도, 슈퍼컴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모 언론사의 향후 로봇대체 가능 직업 순위에서 예술은 당당히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그 안도의 뒤에는 여전히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건 바로 기계의 무서운 진화였다. 즉, 하나의 정책망과 인위적 신경망이 거세게 작동해 교사학습을 통과하고, 이 학습된 망끼리 서로 교차, 구분, 비교, 대전하며 그 결과에 따라 재차 학습을 강화함으로써 점차 ‘감정’의 영역으로까지 점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쯤 되면 그동안 인간이 맡아온 다양한 일(Job)들을 더 이상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정작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휴머노이드(humanoid)에서 실체적 인간화로의 진화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다만 아직까진 기계가 곧 인간은 아니다. 감정까지 표현하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의 로봇 앤드류(NDR-114)나 터미네이터(Terminator)의 T-800은 영화 속 주인공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이 렘브란트의 그림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인간성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렘브란트의 작품 여러 점을 입력해 분석하고,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통해 렘브란트 그림의 특징들을 학습한 결과에 머문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엑스마키나(Ex Machina)의 ‘에이바’는 없다. 창조자 ‘디온’이 채피(Chappie)의 놀라운 기술을 통해 로봇으로 의식을 옮겨가 새로운 창조물이 되고, 방전되어가던 채피가 또 다른 로봇의 몸으로 자신의 의식을 전이시켜 전혀 다른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끔찍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과 자아는 인간만 갖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간과 AI가 함께 살아가는 ‘포스트 휴먼(Post Human)’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점차 기계에 인간의 역할을 내주고, 인간은 구조 속에서 기계화되고 있다는 동시대적 사실은 명징하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고, 꿈을 꾸거나 무의식을 지닌 영장류라는 생물학적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나 기계 특유의 흔들리지 않는 분석력, 어떤 경우의 수든 곧바로 학습하고 적응하는 놀라운 적응력, 고도의 계산력과 변용력 등에 의해 인간이 할 일이 잠식당하고 있다는 불안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음도 부인하긴 어렵다.
작가 천근성의 이번 전시 작품들은 이러한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그는 <반복노동 대행 서비스>라는 제목의 전시를 통해 대량소비 및 대량생산 시대에서 ‘인간상’이란 것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일까를 묻고 있다. 기계화가 잉태한 다양한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점차 인간이 기계가 되고 기계가 인간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정말 윤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기계화가 오히려 소외되고 불완전하며 두렵기까지 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우린 스스로를 애써 위로한 채 당연시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그 시작은 도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로봇마네킹’을 접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우연히 사람 대신 하루 종일 팔을 흔들고 있는 마네킹을 보며 인간과 기계의 역할론, 경계론에 대해 생각 했다. 고속도로 무인 요금소를 지날 때마다 일자리의 축소를 확인하곤 했다. 생각해 보니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건 그에게 업무 알고리즘이 비교적 단순해 자동화가 가능한 일자리들이 대체되고 있다는 현실인식의 다른 말이었고, 기술발전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예술 동기를 잉태했다.
이와 같은 관점은 그의 작가노트에도 잘 드러난다. 그는 “현대에 들어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며 이를 ‘노동 소외 현상’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인간마저 구조화된 사회에서 이젠 인간자체가 하나의 기계처럼 취급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여기서의 핵심은 ‘인간마저 구조화된 사회에서 이젠 인간자체가 하나의 기계처럼 취급되는 현상’이랄 수 있다. 작가는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일례로 김영규 작가, 김재욱 작가, 김태형 작가의 도움으로 완성된 ‘CGS 홈쇼핑 방송’ 영상 작업은 기술발전에만 목을 맨 채 대중을 호도하는 세태를 꼬집고 있다. 함께 발표한 <근성마네킹 마트판매원>이나 <근성마네킹 잡지 외판원>, <근성마네킹 구세군>과 같은 작품들 역시 동일한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들은 인간이 해온 일들을 점령하고 있을뿐더러 시스템의 일부로써의 인간을 점증적으로 치환해놓고 있는 오늘의 기호랄 수 있다.
특히 박현미 작가의 오프닝 퍼포먼스는 시스템 이면에 놓인 구조 속 인간의 기계화(machinenoid)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임시로 설립한 ‘(주)근성이엔지(ENG)’는 그 모든 것을 묶는 총체적이고 포괄적인 구조를 상징하는 어떤 거대하고 가공할만한 하나의 지붕(Roof),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련의 작업은 외적으로 단순하고 메시지도 간결하다. 그 겉만 본다면 어떤 면에선 낯설지도 흥미롭지도 못하다. 내레이션이 강해 빤하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그 작품들을 관통하는 끝자락엔 유심히 보아야 알 수 있는 가치가 배어 있다. 바로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 노동에 대한 시각, 약자에 대한 관심, 더불어 사는 삶에 관한 배려와 촉구이다.
이 중 약자에 대한 배려와 함께하는 삶이라는 작가의 가치관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7월 17일 진행된 창작경연 <작가대전>에서 선보인 작품이었다. 그는 당시 예술의 해석 가능함을 전제로 청소노동자이들 처한 상황을 예술의 일부로 끌어들였고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현장성을 피력했다. 그들이 일하는 공간과 예술을 담는 공간, 노동자와 예술가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등에 대해 서술했다.
노동자들의 방에 에어컨과 환풍기가 없어 문을 열어 놓고 식사를 해야 하는 열악한 공간을 목도하면서 태어난 이 작품은 스튜디오와 휴게실을 송풍기로 연결하거나 옥외에 휴게실을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중노동적’ 작품이었다. 세심한 관찰자의 시선 아래 평소 작가가 실천해온 작업스타일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일련의 작품들이 딱히 대단히 큰 감동을 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의 마음속에 내재된 지향점과 주된 가치관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전달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술을 통해 일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공존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작가는 자신이 거주했던 문래동 등, 침체되고 쇠락해 가는 지역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또한 다분히 현장성이 강했다. 예를 들면, 노인 요양 병원을 찾아다니며 예술 활동을 펼친 ‘로컬 익스프레스’의 ‘안녕 배달’ 프로젝트나 1986년 가동을 중단한 독일 푈클링(Volklingen) 제철소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버려진 장소에서 주어온 물품들을 조합해,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 ‘빈집 프로젝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들 역시 일상 속 예술이라는 테제로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 들고 나는 사람들에 대한 읊조림, 문명 발달 속 인간의 소외감과 정체성과 같은 휴머니티한 화두가 담겨 있다. 동시대 삶에 대한 작가만의 눈길을 닿아 있다. 이러한 과거만 봐도 우린 천근성 작가의 시선이 늘 어디로 향해 왔는지 알 수 있다. 즉, 장르를 넘나들며 형식은 변화했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하나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천근성의 작품들은 시각적으로 열람되거나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핵심이 있다. 특히 보이는 것 외, 그의 정신과 자아에 새겨진 세계관과 관점에서 비전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당위성을 포함해, 문명, 기계화, 노동, 소외, 고립과 같음 다소 음울한 명사를 자신의 조형에 대입해 개간하고 진지한 태도로 나와 우리의 초상을 한결같이 견지해 왔다는 점은 색깔 또렷한 작가상을 도출할 수 있는 미래가치를 획득함은 물론, 간간이 엿보이는 현재의 상투적인 어법을 상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창작경연 작가대전, 2015
안규식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유년기 시절 유독 병약했던 작가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 기회가 많지 않았다. 자연스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주변 사물들에 대한 호기심도 더불어 늘어났다. 운신의 폭이 좁은 생활여건 때문에 일상에서 포착되는 소소한 사물들이 그에게는 대면하며 소통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때 발달한 상상력은 그를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때부터 작가는 사물을 의인화하여 보기 시작했고, 지금도 모든 사물에는 영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애니미즘의 신봉자로 살아가고 있다.
사계절의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청소년기의 그에게 이 세상은 답을 찾아야 하는 의문투성이였다. 대학에 가기 전 삼라만상이 어떠하며, 생로병사의 진리는 순환됨을 골똘히 생각할 정도로 그의 사고는 또래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불교사상을 근간으로 설립된 대학교에 입학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만물은 자체의 영이 있고, 국면을 달리하며 순환될 뿐 소멸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은 첫 번째 개인전 <순환; 만물의걸음걸이>으로 귀결되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이 전시를 통해 그동안 쌓았던 사유의 무게를 모두 보여주고자 했지만, 미술계의 주목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한동안 우주론적 관점에 사로잡혀 있던 작가는 돌연 휴학을 하고 삶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그러한 거시적 사유도 삶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소용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취직도 해보고, 군대도 다녀왔으며, 물 건너 노동자로서의 생활도 마다하지 않고 실행으로 옮겼다. 생활전선에서 겪은 체험이 영감으로 작용했을까. 작가로서의 험로를 다시 선택한 그가 10년 만에 졸업한 대학을 등지고 행동으로 옮긴 첫 번째 일은 문래창작촌에 입주하는 것이었다. 公共財로서의 예술을 고민하던 많은 작가들을 만나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었으며,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통로를 공공미술에서 찾았다. 특히 그는 리사이클링 작품에 관심이 많았는데, 용도 폐기된 오브제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문래동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그룹 활동을 하던 그에게 독일로 갈 기회가 찾아왔다. 공공미술을 하는 한국과 독일 양 그룹 간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출품된 작품을 보면 그의 작업이 보다 진지하게 사회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86년 가동을 멈추고 지금은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2차 대전 당시의 제철소. 그는 독일의 푈클링엔에 있는 이 제철소를 세련된 사진의 배경이 되는 표면적 가치로만 보진 않았다. 전쟁의 폭력성을 폭로하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인격조차 짓밟힌 노동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천도제를 올려 진혼의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작가에게 이 작품은 좀 특별했던 것일까. 예술발전소 <창작경연>에 대표작품으로 출품했으나, 심사위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전언의 힘은 강했지만, 예술적 각색이 보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두 번째 출품된 작품은 필자에게도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했다. 도시개발사업으로 철거된 주택에서 찾은 낡은 사물들의 집합이 시각적 시너지 없이 개성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 재개발을 통해 우리의 삶이 너무 상업주의로 가는 것은 아닌지, 이런 흐름 속에서 인간도 물화되는 건 아닌지” 반추해 보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들은 후에는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작가 본인의 섬세한 감수성을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하고 정형화된 클리셰로 흐른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아무리 그럴듯한 오브제라 할지라도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하지 못하면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2차 미션에서는 작가의 잠재력을 보았다. 미션의 내용은 권력, 생태, 미술 등 세 개념을 작품화하는 것이었는데, 선풍기와 줄에 매달린 전구를 사용해 현재 우리가 처한 미술계의 권력관계를 극적으로 연출했다. 쓰러지지 않으려는 권력자로 상징된 선풍기와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피권력자를 의인화한 전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마치 생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자, 미술계 내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 생존을 강요받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오버랩시킨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미션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우러나오는 작가의 따뜻한 인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미션에서 작가는 에어컨도 없고 창도 없는 휴게실에서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이 땀 흘리며 식사하는 모습에 착안하여, 작가가 입주한 예술발전소 스튜디오의 에어컨 바람을 거대한 관으로 그들의 휴게실과 연결해 공급해주는 설치작품을 공개했다. 이 작품은 두 공간이 시원함으로 연결되는 물리적 결과뿐만 아니라, 예술과 사회, 작가와 관객이 연계되는 다층적 의미를 생산했다. 보다 중요하게는, 예술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하였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작가는 예술의 공적 역할에 주목해 왔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기저에 깔린 작업을 해왔다. 그러한 사회적 전언의 힘이 곧 그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작가의 심미적 감각이 彫琢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 미술계의 풍토 역시 K-팝처럼 시스템에 의해 유명작가를 만드는 비즈니스로 변해가고 있으며, 그 세계에 속하지 않고서는 예술가로서 성공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성공의 메카니즘 반대편에 있지만 이 세상을 예술로 밝게 비추는 천 작가의 작품세계가 더 높이 평가 받을 날이 오길 기대한다.